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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결국 내가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거란다

이기주 작가가 전하는 ‘진짜 인생의 재산’과 어머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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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요리사, 이기주 작가 이기주의 책은 여백이 많아서 좋다.

생각할 공간을 준다는 뜻이다.

작가의 생각을 욱여넣지 않아서 더욱 좋다.

그가 쓴 <언어의 온도>에 매료되어 이 책도 찾았다.

그의 글은 추상적이지 않고 철학적이거나 고상한 척 하지 않아서 친숙하다.

생활을 벗어나 딴 세상 얘기하듯 설득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나거나 겪은 세상 이야기를 글샘에 묵혀 두었다가 곰삭은 감동적인 언어의 양념으로 잘 버무려 내놓는 언어의 요리사다.

그것은 그 자신이 삶의 고비마다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때마다 잘 버텨내며 찾아낸 인생의 비결이 묻어난다.

특히 그가 찾아내서 인용하는 에피소드는 맛깔나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식도락의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그는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담은 소박하고 신선한 글들을 친절함이라는 그릇에 담아 청초한 풀꽃 곁에 조심스러이 내놓곤 한다.

나는 작가들을 존경하고 공경한다.

마음을 휘젓는 대사를 배우들의 연기력 위에 얹어 내놓는 시리즈물이나 영화, 드라마의 한 장면에 넋을 잃곤 한다.

그 한 문장을 만나기 위해 지루한 전개를 참아낸다.

가슴을 때리는 그 한 문장을 내놓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들이며 대본을 다듬었을까.

그것은 작가의 내면세계이자 세상을 향한 울부짖음이리라. <달팽이의 별>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달팽이처럼 촉각에만 의지해 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사는 남편과 척추 장애를 앓는 아내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린 가장 귀한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있습니다.

가장 값진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습니다.“  -72쪽 어느 왕국에 아름다운 여인이 살았다.

사내들은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애썼다.

노모와 함께 사는 한 남자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마을 어귀에서 작은 푸줏간을 했다.

여인을 향한 연정은 그의 마음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되어 종일 굴러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여인과 마주친 사내는 감춰온 마음을 내보였다. “내 마음을, 내가 지닌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가 내게 사랑을 고백했어요.

다들 진귀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가져왔지만 내 마음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흠, 정말 특별한 것을 보면 내가 흔들릴지도 모르겠네요.” “특별한 것이라면…….” “혹시 당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의 심장을 가져올 수 있나요?” “제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제 어머니인걸요…….” “ 당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있다면 나는 다른 남자들의 구애를 물리치고 당신의 청혼을 수락할게요.” 사랑에 눈이 먼 사내는 그날 밤 짐승으로 돌변했다.

어머니가 잠든 사이 심장을 파냈다.

동이 트자마자 어머니의 심장을 들고 여인을 만나러 뛰어가던 그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심장에서 울음기 섞인 어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들아, 어디 다쳤느냐?

천천히 가거라, 천천히…….” 188~189쪽,  어머니의 눈물 중에서.

이 보다 더 어머니에 대한 정의를 잘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세상에는 비정한 어미가 있는 것도 현실이지만 아직도 모정을 넘어서는 가치는 지상에 없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그 내리사랑이 없다면 인간 세상에는 비극이 넘쳐날 것이니.

바다 해(海)에는 어미 모(母)가 스며 있다.

어머니는 바다를 닮았다.

자식이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의 마음은 깊고도 따듯하다.

그 품에 안기면 어른도 아이가 된다.

어머니의 사랑은 맹목적이다.

자신의 삶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매번 자식을 보듬는다.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고 억장이 무너지더라도 어머니는 끝내 자식을 용서한다.

제아무리 짙은 어둠 속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어둠을 찢고 빛을 향해 나아간다. --- 「어머니의 사랑」 중에서 마지막에 남는 인생의 재산, 산타 할아버지 프랑스의 수필가 도미니크 로로는 <심플하게 산다> 라는 책에서 “우리는 공간을 채우느라 공간을 잃는다” 라고 했다.

참 심오한 표현이다.

저장강박이 있는 나에게 매우 적절한 충고가 되어준 말이다.

뭔가 허전한 구석을 가만 두지 못하고 가구나 화분, 책장을 배치해야 직성이 풀리니!

더구나 집안의 물건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잠을 자다가도 원하는 자리로 옮기곤 한다.

아래층에 소리가 들리지 않게 물건 밑에 방석을 깔고 밀고 다닐 정도로 공간에 신경을 쓰는 나 자신을 이해하기 어렵다.

정리정돈이 안 된 상태에서는 다른 일을 시작하지도 못한다.

이쯤 되면 집착에 가깝지만 고칠 생각은 없다.

우리는 말을 많이 하느라 말씀을 잃고 사는 건 아닐까.

너무나 많은 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말하는 사람도 많고 들리는 말도 많은 세상이다.

이제는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섞여 있으니 귀를 막고 사는 게 오히려 건강에 더 좋은 세상이 아닌지.

그 말에 파묻혀서 말씀은 더욱 찾기 어렵다.

그야말로 말과 말씀을 감별할 수 있는 초능력이라도 갖춰야 영혼을 지킬 수 있으리라.

도미니크 로로의 직설에 기대어 나도 한마디 덧붙여 본다.

'재산을 늘리려다 인생의 재산을 잃는 것은 아닐까.' 지면과 온라인, 유투브 등 온 세상이 돈 이야기로 점철된 세상이다.

물질 이야기가 아니면 할 말이 없는 걸까.

연예인이 빌딩을 사서 몇 백 억을 남긴 이야기, 누구는 주식 부자요, 또 누구는 부동산 부자 이야기 등.

가히 돈에 매몰된 세상이다.

그 돈 때문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사람, 사람을 해치고 범죄자가 된 사람, 가족을 버린 사람, 친구를 배신하거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 등.

강력 사고와 사건이 세상을 뒤흔드는 현실이다.

죽을 때는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는 돈에 대한 이야기 대신 더 중요한 진정한 인생의 재산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사람도 드물다. “기주야, 인생 말이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어찌 보면 간단해.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결국에는 본인이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163쪽, 산타클로스 중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얼마나 간결한 인생에 대한 정의인가!

본인이 산타 할아버지가 되라는 강렬한 메시지가 아닌가!

이 문장은 2026년에 만난 최고의 문장이 분명하다.

이 책의 제목과 주제에 딱 들어맞는 문장이다.

작가는 제목에 맞는 고갱이를 이렇게 깊숙히 숨겨놓았다.

아직도 인생에 대한 회의와 연민, 허무로 자꾸만 뒤로 물러서는 나 자신을 채찍하는 문장을 만나서 행복하다.

지금부터 나의 시간을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데에 쓰라는 지상명령을 들었으니!

인생의 재산을 찾았다.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동안 피곤해 하며 외손녀에게 내어준 나의 시간을기꺼이 건네리라.

그것이 사랑이라는 작가의 속삭임에 주문을 걸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