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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늦자 포기 않고 문 두드린 아들, 발견한 주도성

실패 속에서 스스로 해결책 찾은 아이, 진짜 주도성의 의미를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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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늦자 포기 않고 문 두드린 아들, 발견한 주도성 관련 이미지 © 코리아NEWS

"엉엉…… 엄마……."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들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아이를 달래며 겨우 상황을 파악했다.

늦잠을 자서 중요한 캠프 면접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순간 황당함과 황망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토요일 오전이라 피곤해하는 아이를 더 자게 두려 외출했던 것인데, 전날 저녁에 말이라도 해줬으면 내가 챙겼을 텐 미리 챙기지 못했다는 속상함, 이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태평하게 잠을 잔 아들에 대한 화, ‘미리 말해줬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아쉬움까지…… 만감이 교차하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혼이 날까 두려워 연거푸 "엄마, 미안해"라며 우는 아이에게 비수 같은 잔소리를 얹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이번에 큰 공부 했다고 생각하자.

엄마보다 당사자인 네 마음이 가장 속상하겠지.

이번 기회를 거울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돼." 그렇게 아이를 달래고 전화를 끊었지만, 요동치는 속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일도 손에 안 잡히니 하던 일 멈추고 느린 걸음으로 장을 보며 달아오른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사실 이 캠프는 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에 입학한 아들에게 꼭 필요한 기회라 여겨 내가 먼저 추천했던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도전했다가 면접에서 아쉽게 탈락한 경험이 있었기에, 고등학교 1학년까지 대상이 확대되었다는 2기 모집 포스터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아들에게 권했다.

처음에는 전공과 맞는지, 배울 게 있는지 이리저리 따지며 차일피일 미루던 녀석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해외체험학습 일정과 신청 마감일이 겹쳐 내심 불안한 마음에 "오늘은 신청서를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톡을 보냈었다.

아이는 타국에서 밤을 새워가며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 위에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껏 꾹꾹 눌러 담아 신청서를 썼다.

시차가 있는 먼 곳에서 카톡으로 실시간 질문을 던지며 수정과 보완을 거듭한 끝에 어렵사리 1차 합격을 거머쥐었던 것이다.

그렇게 간절하게 붙잡은 기회였는데, 몸살감기로 지친 몸을 이기지 못하고 면접 당일 아침에 눈을 뜨지 못했으니 아이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까.

아이는 면접 사이트가 닫힌 것을 보고도 포기하지 않고 카카오 운영진의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몸이 안 좋아 늦었다고 솔직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연락을 기다린다는 아들의 말에, 나는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마 어려울 테니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다독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서는 사정이 생겨 면접을 보지 못한 학생 중 잔여석이 남아 재면접 기회를 주겠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아들이 실패한 직후 절망에 주저앉는 대신, 운영진에게 정중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문을 두드렸던 그 정성과 책임감이 카카오 측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기를 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연락한 그 정성과 마음이 정말 훌륭하다, 아들!" 카톡 너머로 아낌없는 칭찬을 건넸다.

문득 평소 지니고 있던 교육적 고민이 스쳤다.

자녀 교육에서 주변의 적절한 개입은 필수적이지만, '얼마나, 어느 만큼' 개입해야 하는가는 늘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지나친 개입은 아이의 주도성을 망칠 것 같고, 지나친 자유는 방임을 넘어 방치로 이어질까 늘 전전긍긍했다.

특히 전공에만 매달리고 기본적인 학과 공부에는 소홀한 듯 보여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주도성의 진짜 얼굴을 보았다.

'학습자 주도성'이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며, 스스로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삶의 기획력을 쌓아가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모든 일이 순탄할 때가 아니라, 안 되는 상황이나 실패의 한복판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는 마음에서 비로소 발현된다.

전화기 너머로 아이는 울먹이면서도 "이번에는 진짜 참여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했는데……"라며, 본인이 꼭 참여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했었다.

그것은 단순히 엄마의 잔소리가 두려워서나 의무감 때문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본인이 마음 깊이 절실히 원했던 것이다.

중국에서 "못하겠다"고 버텨도 그만이었을 것을, 밤새 휴대폰의 작은 창을 바라보며 신청서를 썼던 아이의 정성은 바로 그 '절실함'의 증거였다.

본인이 꼭 참여하고 싶었던 그 뜨거운 갈망이 있었기에, 늦잠이라는 뼈아픈 실수 앞에서도 스스로 상황을 수습할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분야에서 생긴 이 단단한 절실함과 주도성은 분명 삶의 다른 영역으로도 전이되고 확산될 것이다.

아이는 멈춰 있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엄마가 조바심 내며 바라는 속도보다 조금 천천히, 더디게 가고 있었을 뿐이다.

아이의 시계는 제 속도대로 건강하게 흐르고 있었다.

지금 아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부모의 강요된 속도가 아니라, 스스로 숨 쉬며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또래 친구들과 선생님, 부모 안에서 겪는 건강한 '상호작용'이다.

그 속에서 아이는 부딪히고 깨지며 긍정적인 변화를 향해 성장해간다.

이제 나는 아이가 실제 삶의 문제 면면에서 진짜 필요를 느끼고 동기를 얻을 수 있도록,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크도록 묵묵히 소통하고 존중하려 한다.

실패의 자리에서 스스로 주도성의 싹을 틔워낸 대견한 아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아이는 제 속도대로, 진짜 제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