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초입, 주부들의 가장 큰 적은 단연 음식물쓰레기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그것들을 모으고 봉투를 묶는 일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코를 찌르는 냄새와 금세 진행되는 부패를 견디다 못해 들여놓았던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는 한동안 우리 집 주방의 든든한 구원자였다.
미생물이 조용하고 천천히, 제 몸을 녹여 음식물을 분해하는 기특한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여름철 가사 노동의 무거운 짐을 한 꺼풀 벗었다고 안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그 조용하던 기계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이면 그 소리는 유독 크게 도드라졌다. ‘삐걱, 삐걱.’ 철컥이며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주방을 넘어 거실까지 흘러나왔다.
마침 얼마 전 전원 코드 문제로 A/S를 한 차례 다녀온 직후였기에, 나는 막연히 수리 과정에서 무언가 어긋났으려니 짐작했다.
원래 기계란 오래 쓰다 보면 저마다의 소음을 내는 법이라고, 기계 탓을 하며 그 소리를 일상의 배경음으로 받아들였다.
익숙함은 무서운 것이어서, 우리 가족은 어느새 그 거친 마찰음 속에서도 무덤덤하게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착각의 잠을 깨운 것은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 친정 식구들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식구들은 밤새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늘 들으며 살던 우리에게는 '으레 그러려니' 하는 소리였지만, 타인의 눈과 귀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소음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1년 가까이 이 소리를 방치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로소 기계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원인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곳에 있었다.
기계의 고장이 아니었다.
음식물을 섞어주는 내부의 회전봉에 그동안 무심히 던져 넣었던 줄기 채소의 질긴 섬유질들이 단단히 감겨 있었던 것이다.
봉이 돌아갈 때마다 그 줄기들이 벽면에 쓸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셈이다.
엉켜 있던 줄기들을 가위로 끊어내고 말끔히 걷어내자, 거짓말처럼 소음이 사라졌다.
그토록 고요하고 평온한 제 본연의 상태로 돌아갈 것을, 나는 원인을 찾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제품을 원망하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끄러우니 기계를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멀리 옮길 생각만 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멋쩍은 웃음이 났다.
베란다로 자리를 옮기면 소음이 크게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던 나의 얄팍한 계산.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마주하기보다 시야에서 치워버리려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일화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스승은 말이 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보시고 제자에게 "수레가 가다가 가지 아니할 때에는 말을 채찍질해야 하겠느냐, 수레를 채찍질해야 하겠느냐" 물으시니, 제자가 "말을 채찍질해야 하겠나이다"라고 답한다.
이에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이 옳으니 말을 채찍질하는 것이 곧 근본을 다스림이라, 사람이 먼저 그 근본을 찾아서 근본을 다스려야 모든 일에 성공을 보나니라.“ 나는 그동안 엉뚱하게도 '수레'만 채찍질하고 있었던 셈이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수레(기계)라는 현상만 원망하고, 그 수레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격리하려고만 했을 뿐, 정작 수레를 움직이게 하고 소음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인 '말(회전봉에 감긴 줄기 식물)'을 다스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소리가 나게 되는 근본을 찾아내어 엉킨 줄기를 걷어내니 이토록 손쉽게 해결될 문제를, 원인을 모른 채 1년이라는 시간을 소음 속에서 둔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알아보면 금세 개선될 터인데, "그러려니 어쩔 수 없지" 하며 속수무책 손을 놓고 살았던 나의 무지함이 참으로 어리석게 느껴진다.
살면서 이처럼 대충 지나쳐버린 삶의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꼼꼼히 챙기기에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핑계로, 내 삶에 생긴 수많은 '소음'들을 그저 방치하거나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데 급급하지는 않았던가.
관계에서, 혹은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들려올 때, 나는 매번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탓하며 마음의 자리를 옮기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해결은 외면이나 회피가 아니라, 소리의 시원을 향해 세심하게 눈을 맞추는 데 있었다.
깨끗해진 음식물 처리기 속에서 미생물들이 다시 조용히 제 일을 시작한다.
고요해진 주방에 서서 다짐해 본다.
앞으로 내 삶에 또 다른 삐걱거림이 찾아온다면, 요란한 수레를 탓하며 멈추어 서는 대신, 수레를 끄는 말의 발을 살피겠노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