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도착이 곧 비극이었던 날, 순천역이 기억하는 1019 여순사건

허물어진 방어선과 멈춘 시간, 새로워진 역사 내부엔 여전히 아픔의 울림이

도착이 곧 비극이었던 날, 순천역이 기억하는 1019 여순사건 - 행정 | 코리아NEWS
도착이 곧 비극이었던 날, 순천역이 기억하는 1019 여순사건 관련 이미지 © 코리아NEWS

1948년 10월 20일 오전 도착.

플랫폼 위로 1천여 명의 발걸음이 쏟아졌다.

여수에서 올라온 시간들이 기차의 쇳바퀴를 타고 순천에 내려앉았다.

나는 역이었다.

도착과 출발을 구분하던 곳.

그러나 그날, 모든 방향이 하나로 쏠렸다.

열차는 멈췄지만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홍순석 중위의 지휘 아래 합류한 병력은 다음 시간으로 이동했다.

광양 삼거리— 동천 제방— 방어선이 무너질 때마다 도시는 점점 안쪽으로 열렸다.

그날의 시간표에는 ‘후퇴’라는 단어가 없었다.

기차를 움직이던 사람들, 철도국 공무원들은 길을 만든 죄로 불렸다.

레일은 방향을 제시했을 뿐인데 그 위를 지나간 이유까지 책임져야 했다.

협조자라는 이름이 그들의 일상을 끊어냈다.

나는 많은 것을 보았다.

도착한 사람들, 떠나지 못한 사람들, 이름 없이 끌려간 사람들.

기차는 다시 움직였지만 누군가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2009년, 나는 새로 지어졌다.

벽은 깨끗해졌고 플랫폼은 밝아졌다.

그러나 시간표 어디에도 그날의 도착은 적혀 있지 않다.

지금도 열차가 들어오면 나는 잠시 귀를 기울인다.

혹시라도 그날의 발걸음이 다시 들려올까 봐.

도착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시작이 아니라 비극의 문이 되었는지, 나는 아직도 그 시각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