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새는 살리고 벌레는 죽인다, 아이들의 모순된 생명 교육

둥지 속 새끼는 걱정하면서 곤충은 가두는 아이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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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살리고 벌레는 죽인다, 아이들의 모순된 생명 교육 관련 이미지 © 코리아NEWS

아이들이 숲의 공간과 익숙해질 무렵 아이들은 새로운 생명을 만났다.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아기새, 공원의 조각상 틈 안쪽에 어미가 둥지를 틀었고 마침 먹이를 찾으러 갔는지 자리를 비운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교사가 잔소리하지 않았음에도 아기새에게 손을 뻗거나 움켜쥐려 하지 않는다.

슬쩍 보고는 자기들끼리 새가 몇 마리 있는지 속삭였다.

아이들은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아기새들은 작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입을 쫙 벌렸다.

아기새가 배가 고픈 건 아닌가, 어미새가 혹시 둥지를 버린 건 아닌지 걱정 가득이다.

아무런 교육과 활동도 없었지만 아기새와 관계가 맺어지고 아이들은 생명체에 감정 이입했다.

한두 명의 아이가 아니라 그 자리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기에 정말 숲에만 있어도 아이들이 성장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기새 뿐이다.

올해 유독 옆 반 아이들이 생물들을 교실로 가져와 키우곤 한다.

좋게 표현해서 키운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가둬놓는다.

애벌레나 방아깨비, 사마귀를 잡아 와 작은 통이나 상자에 가두고 풀을 좀 뜯어 넣어놓는다.

작은 치어나 올챙이, 다슬기를 잡아 와 수조에 물을 담아 그 안에 가둬놓는다.

어쩌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간 적이 있지만 대부분의 생물은 죽는다.

그럼 아이들은 적당히 슬퍼하며 화단에 묻어주고는 며칠 안 지나 또 다른 죄수를 찾아 떠난다.

몇 번을 그냥 풀어주기를 부탁했지만 아이들은 곤충채집을 멈추지 않는다.

여름방학 숙제에서 곤충채집이 사라진 지는 오래 되었지만 곤충들은 여전히 갇혀 관찰을 당한다.

다른 생명체보다 유독 곤충들을 대할 때 아이들은 죄책감이 덜하다.

곤충의 죽음은 아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지도 못한다.

아이가 곤충의 입장이 되어 공감해 주면 좋겠다.

아니면 교실 안의 곤충을 보며 안쓰러워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점심시간, 화단에서 곤충을 찾고 있는 아이들에게 참견을 해본다.

"곤충 불쌍하지도 않아?

그만 잡아." "안 불쌍해요!

우리가 밥도 주고, 집도 만들어주는데요?" "선생님이 너희 교실에 가둬놓고 밥도 주고 이불도 주면 편안할까?" "아니요.

그래도 우리는 나비 되거나 다 크면 풀어줘요!" "그럼 나도 너희 어른 되면 그때 집에 보내줄게." 아이와 조금은 유치한 대화들이 오고 간다.

여전히 곤충을 잡는 아이들이 많다.

여름이 되면 잠자리를 잡겠다며 점심시간에 늠름하게 잠자리 채를 들고 밖을 돌아다닌다.

나는 그런 아이 뒤통수에 여전히 잔소리를 한다.

"선생님 잠깐 보고, 진짜 잠깐 잡아서 보고 풀어줬어요." 칭찬을 바라는 아이에게 웃으며 '잘했다.' 한마디를 던진다.

아이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잔소리가 전혀 쓸모없지는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