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아빔(Mise-en-abyme)’은 거울 속에 비친 거울처럼, 하나의 형상이 그 내부로 자신을 닮은 이미지를 무한히 복제해 넣는 심연의 구조를 말한다.
조선의 방랑 시인 김삿갓(김병연)을 이 렌즈로 투과해본다는 것은, 그가 쓴 삿갓이라는 폐쇄된 액자가 어떻게 세상을 투영하고, 그가 내뱉은 파격의 시어들이 다시 인간의 가식과 본질을 어떻게 무한히 복제해내는지를 추적하는 일이다.
김삿갓은 단순한 기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세상이라는 판 위에서 지워버림으로써 역설적으로 세상을 가장 선명하게 비춘 ‘살아있는 거울’이었다.
첫 번째 액자는 ‘삿갓’이라는 단절된 세계의 프랙탈이다.
김삿갓은 조상을 욕한 죄인이라는 자책감으로 하늘을 보지 않기 위해 평생 삿갓을 썼다.
이 삿갓은 외부와 나를 분리하는 물리적 액자인 동시에, 그 안에서 끝없이 번뇌하는 자아를 가둔 내면의 감옥이다.
삿갓 안의 어둠은 그가 마주한 세상의 부조리를 복제해내고, 그 어둠 속에서 탄생한 시들은 다시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삿갓이라는 작은 공간이 광활한 팔도강산의 고통을 모두 담아내어 복제하는 지성적 심연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액자는 ‘언어적 전복’의 미장아빔이다.
김삿갓의 시는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한 기발한 해학으로 가득하다.
겉으로는 평범한 한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양반 사회의 가식과 탐욕을 조롱하는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다.
문장이라는 액자 속에 또 다른 풍자의 액자를 숨겨놓는 이 재귀적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문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기득권의 허위의식을 파괴하는 경험으로 복제되게 만든다.
그의 시는 읽힐 때마다 당대 사회의 모순을 거울처럼 마주 보게 하며 무한한 해방감을 투영한다.
세 번째 액자는 ‘방랑과 자아’의 반추다.
김삿갓은 정처 없는 유랑을 통해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 속에 자신을 복제하여 심었다.
문전박대당하는 거지의 모습(부분)에서 몰락한 양반의 고독(전체)을 보고, 그들의 투박한 사투리를 시의 품격으로 승격시켰다.
타인의 비루한 일상을 자신의 시적 액자 안으로 끌어들여 복제하는 과정은, 결국 잃어버린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처절한 미장아빔의 여정이다.
길 위에서 만난 수천 개의 얼굴은 김삿갓이라는 거울에 비친 수천 개의 자화상이었다.
결국 김삿갓을 미장아빔한다는 것은, 삿갓 아래의 어둠이 사실은 세상을 비추는 가장 눈부신 빛이었음을 깨닫는 일이다.
그의 방랑 끝에 남은 소실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한히 반복되던 풍자와 조롱의 액자가 사라진 그곳엔, 비로소 투명해진 한 인간의 고독이 놓여 있을 것이다.
김삿갓의 삶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세상이 씌운 굴레(액자)가 아무리 무거워도, 그 안에서 너만의 진실한 목소리를 복제해낼 수 있다면 너는 영원히 자유로운 방랑자라고 말이다.
삿갓이라는 작은 심연이 조선이라는 거대한 액자를 삼켜버린 이 장엄한 미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실존의 거울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