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창가에 내려앉는 볕의 온도가 달라졌다.
한국의 계절이 바뀌듯, 바다 건너 그 넓은 땅 중국의 공기도 조금은 부드러워졌을까.
휴학이라는 큰 결심을 하고 제 몸집만 한 배낭을 짊어진 채 인천공항 검색대 너머로 사라지던 딸의 뒷모습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대학 교정의 익숙한 편안함 대신 타국에서의 고단한 인턴 생활을 선택한 아이.
그 씩씩한 발걸음 뒤에 숨겨진 설렘과 두려움을 엄마인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딸은 학창 시절부터 유독 엉덩이가 무거운 아이였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주변의 소음에도 흔들림 없이 책상 앞을 지키며 제 몫의 성취를 일궈내곤 했다.
그런 딸이 중국어라는 전공을 들고 낯선 땅으로 떠났을 때, 나는 아이가 그곳에서도 특유의 성실함으로 뿌리를 내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이란 늘 믿음보다 안쓰러움이 앞선다.
가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에 섞인 옅은 피로감, 잘하고 있다는 씩씩한 대답 끝에 묻어나는 이국땅의 외로움이 전해질 때면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지곤 한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부딪히며 인턴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실무를 익히는 과정을 넘어선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그 한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치열한 성장의 기록이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딸의 다짐을 보며, 나는 오히려 아이에게서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를 배운다.
익숙한 안락함을 버리고 기꺼이 고생스러운 길을 자처한 딸의 선택은, 그 자체로 이미 가장 찬란한 성취다.
지금 딸이 흘리는 땀방울과 잠 못 이루며 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은 헛된 공상이 아니다.
낯선 대륙의 단단한 흙을 뚫고 나오기 위한 새싹의 몸부림과 같다.
학창 시절 묵묵히 글자를 눌러 쓰며 지식을 채우던 그 단단한 손끝이, 이제는 현실의 벽을 두드리고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
대견함과 안쓰러움은 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오지만, 나는 안쓰러움을 믿음으로 덮기로 한다.
세상이라는 넓은 지도 위에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그려 나가는 내 딸.
아이가 겪고 있는 그 고군분투의 시간들이 훗날 얼마나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날지 알기에, 나는 오늘도 멀리서 마음의 기도를 보낸다.
너는 존재만으로도 나의 자부심이며, 네가 걷는 모든 길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고.
낯선 대륙의 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피어날 내 딸의 계절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