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대물림은 굴레인가, 사랑인가: 엄마와 딸의 경계

자율성을 삼키는 사랑의 그물, 서로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도록 선을 긋는 법

코리아NEWS 취재팀
대물림은 굴레인가, 사랑인가: 엄마와 딸의 경계 - 일반 | 코리아NEWS
대물림은 굴레인가, 사랑인가: 엄마와 딸의 경계 관련 이미지 © 코리아NEWS

엄마와 나, 그리고 내 딸.

삼대의 삶은 같은 길을 걷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저마다의 무게를 실은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독립된 여정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모서리가 닳아 마모된 세월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었다.

까탈스럽게만 느껴졌던 엄마의 눈짓과 잔소리가 내 표정에 묻어나고,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젓던 딸아이의 행동 속에서 다시 나의 젊은 날이 겹쳐 보인다.

거울을 보듯 서로를映映(영영)하며 깊어지는 이해.

그것은 한편으로 가슴 뭉클한 위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늘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이것이 바로 대물림일까." 어릴 적 나는 엄마의 삶을 은연중에 부인하곤 했다.

'왜 저렇게 스스로를 얽매며 살까', '나는 절대 저런 모습으로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불편해했던 기억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엄마가 걸었던 그 길 위에 그대로 서 있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의 영역을 기꺼이 밀어 넣던 엄마의 습속을 나 역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신경을 끄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식의 삶에 개입하고 마음을 쏟는다.

오랫동안 보아왔고 익숙해진 그 사랑의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털컥 겁이 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 거대하고 촘촘한 그물이 어쩌면 나와 내 딸의 자율성을 삼켜버린 것은 아닐까.

엄마로부터 내가 완전한 개체로 서야 했듯, 이제 내 딸도 나로부터 온전히 분리되어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할 시기다.

그리고 보호받는 품이었던 엄마를 이제는 내가 품어 안아야 하는 시기, 즉 양육과 봉양이라는 두 개의 무거운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려야 하는 대한민국 중년의 삶 한가운데에 내가 있다.

독립과 연결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필요한 것은 차갑지만 다정한 '선(線)'이다.

그러나 평생을 얽혀 살아온 혈육 사이에 선을 긋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매몰차게 돌아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놓아주지도 못한 채 자꾸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닮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물림이 꼭 삶의 굴레여야 할 이유는 없다.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그 고단했던 삶을 비로소 품어 안게 된 것처럼, 내 딸 역시 언젠가 나의 유난스러웠던 사랑을 긍정하게 될 날이 올 테니까.

다만 이제는 그 대물림의 궤적을 조금씩 바꾸어보고 싶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율성을 삼키는 굴레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해 주는 지혜로운 유산으로 말이다.

완벽하게 선을 긋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의 수레바퀴가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봐 주는 연습.

그것이 내가 엄마로부터 받아 딸에게 전해주어야 할 진짜 사랑의 대물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