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아직도 어린 줄 알고, 나는 아직도 엄마가 젊은 줄 안다.
이 짧은 문장 속에 우리 모녀의 억겁 같은 세월이 담겨 있다.
곧 팔순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간은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는데, 내 마음속 엄마는 여전히 집안의 대소사를 척척 해결하던 무적의 ‘힘꾼’으로 멈춰 서 있다.
지난주, 엄마의 생신을 맞아 찾은 친정집엔 그야말로 ‘김치 잔치’가 벌어져 있었다.
파김치, 깍두기, 물김치까지….
일일이 껍질을 까고 다듬어야 하는 그 고된 공정의 산물들이 통마다 가득가득 담겨 있었다.
오남매에게 고루 나눠주기 위해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그 많은 양념을 버무렸을 엄마를 생각하니, 그 굳건한 의지에 경탄하면서도 앞서는 건 뭉클한 미안함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김치를 담가 엄마를 봉양해야 할 때가 아니냐고, 제발 이제는 좀 쉬시라고 볼멘소리를 해보지만 엄마는 요지부동이다.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그러냐”며 핀잔을 주는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신의 손끝이 아니면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시원치 않을까 걱정하는 고집스러운 사랑이 들어차 있다.
사실 나는 이번에 엄마가 정성껏 담가둔 파김치와 물김치를 챙겨오지 않았다.
요즘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으니 가져가 봐야 처치 곤란일 것 같다는 현실적인 계산 때문이었다.
내가 안 가져가야 엄마가 다음부터는 이 고생을 안 하시겠지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자꾸만 백미러에 비친 엄마의 서운한 눈빛이 밟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안 가져가면 안 담그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에게 김치를 담가 자식들에게 들려 보내는 일은 단순한 가사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신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증명이며, 자식들을 향해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사랑의 권력이었다.
그것이 엄마의 ‘존재 이유’이자 삶을 지탱하는 낙이라는 사실을, 나는 왜 집에 돌아와서야 깨달았을까.
엄마의 김치는 매콤하고 시큰하다.
그 맛은 혀끝에 머물지 않고 가슴 깊은 곳으로 내려가 자꾸만 뜨거운 눈물을 길어 올린다.
다음번에 엄마를 뵙거든, 그때는 양손 가득 엄마의 사랑을 무겁게 들고 와야겠다.
비록 집안에 김치 냄새가 가득 찰지언정, 엄마의 존재 이유가 우리 삶 속에 오롯이 살아있음을 기쁘게 확인시켜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