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금과 망고는 실존의 어둠을 건너는 지혜이다.
인생의 화려한 무대 뒤로 커튼이 내려지고, '퇴직'이라는 낯선 간이역에 내려선 지 어느덧 4년째다.
오월의 푸르름이 세상의 창가를 가득 채울 때, 역설적으로 퇴직자들의 거실에는 소리 없는 그림자가 드리우곤 한다.
현직 시절에는 매일이 축제 같았고, 은퇴 후의 삶은 온통 여유와 즐거움으로 가득 찰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은퇴의 실존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가슴 깊은 곳에서 나지막이, 그러나 뼈아프게 터져 나오는 고백이 있다.
"퇴직하면 즐거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울과 고통으로 산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가야 할 일터가 없다는 상실감,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 가져오는 고독은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우울'의 파도가 된다.
여기에 평생 세상을 일구느라 성한 곳 없이 삐걱거리는 육체의 통증은 지독한 '고통'의 청구서로 날아든다.
즐거움으로 가득할 줄 알았더니, 매일 마주하는 것은 우울과 고통이라는 삶의 민낯이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아침 식탁 위에서 울금을 먹고 망고를 먹는다.
이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을 좀먹는 어둠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가장 눈물겹고도 격조 높은 실존적 투쟁이다. 1.
즐거움의 신기루가 걷힌 자리, 우울과 고통의 실존 젊은 날의 우리는 '퇴직만 하면 즐겁게 살리라'는 희망의 신기루를 쫓아 달린다.
취미 생활을 즐기고, 여행을 다니며, 매일을 휴가처럼 보내는 낙원을 꿈꾼다.
그러나 막상 은퇴라는 경계선을 넘어 일상의 시계추가 멈추었을 때, 인간이 먼저 마주하는 것은 자유의 기쁨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감이다.
우울, 존재의 소외가 주는 그늘: 명함 한 장에 담겼던 사회적 지위와 동료들의 광장이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공허가 찾아온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만 멈추어 서 있다는 소외감은 마음의 감기이자 깊은 늪인 '우울'을 길러낸다.
고통, 정직한 육체의 청구서: 현직 시절 정신력과 책임감이라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누르고 있던 육체의 피로가 일시에 터져 나온다.
관절마다 찾아오는 둔탁한 통증, 약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몸의 항상성은 매일 아침을 고통의 확인으로 시작하게 만든다.
"우울과 고통으로 산다"는 말은 결코 나약한 패배자의 독백이 아니다.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낸 인간이 인생의 황혼녘에 이르러 마주하는 가장 정직하고도 피할 수 없는 생의 감각이다.
이 어둠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
나는 나의 식탁 위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2.
울금과 망고: 우울을 금(禁)하고 고통을 잊다 내가 매일 먹는 울금과 망고는 단순한 약재나 과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어둠을 밝히는 철학적 상징이자, 내면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발명해 낸 마음의 묘약, 즉 '울금망고(鬱禁忘苦)'의 세계다.
울금(鬱禁) — "우울을 금(禁)하다" 밭에서 나는 황금이라 불리는 울금은 그 빛깔부터가 찬란한 태양을 닮았다.
독특하고 쌉싸름한 맛을 지닌 울금의 뿌리를 씹으며, 나는 마음에 엉겨 붙은 어두운 찌꺼기들을 털어낸다.
한자어 그대로, 나는 이 노란 빛깔의 뿌리를 먹으며 내 삶에 찾아드는 '우울을 단호히 금(禁)하겠다'고 마음 깊이 맹세한다.
울금의 쌉싸름함은 느슨해진 정신을 번쩍 깨우는 각성제이며, 내면의 소란을 잠재우고 맑은 성찰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산파(産婆)의 손길과 같다.
망고(Mango) — "고통을 잊다(忘苦)" 울금의 쌉싸름함을 달래주는 것은 부드럽고 달콤한 황금빛 과일, 망고다.
입안 가득 퍼지는 망고의 진한 달콤함은 부조리한 세상과 육체가 주는 고통을 잠시 잊게 만든다.
나는 망고를 베어 물며 그것을 '망고(忘苦) — 즉, 고통을 잊는 일'이라 명명한다.
인생의 거친 파도를 지나오며 몸과 마음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와 통증들을, 이 달콤한 생명의 열매를 통해 위로하고 다독이는 것이다.
망고의 달콤함은 신이 인간의 황혼에 허락한 작은 면죄부이자,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낼 수 있도록 다정하게 등을 두드려주는 위로의 언어다. 3.
'울금망고'의 미장아빔: 단 한 번의 마주함으로 구하는 나 내가 식탁 위에 울금과 망고를 나란히 올려두고 바라보는 행위는, 내 삶의 전 과정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미장아빔(Mise-en-abîme, 무한 거울)'의 시간이다.
노랗고 찬란한 두 식물의 빛깔 속에는 오월의 햇살이 담겨 있고, 내가 걸어온 뜨거웠던 젊은 날의 열정이 담겨 있으며, 동시에 그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현재의 고독한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
울금(鬱禁) 과 망고(忘苦).
쌉싸름하고 묵직한 맛과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우울을 금하고 정신을 깨우는 각성과 고통을 잊고 상처를 다독이는 위로, 어둠에 맞서는 단단한 의지(자기구원)와 생을 수용하고 다정하게 안아주는 포용.
이 두 가지 맛과 의미가 식탁 위에서 하나로 어우러질 때, 퇴직 후의 우울과 고통은 단순한 괴로움이 아니라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 깊은 지혜의 재료로 재탄생한다.
무한한 허무로 빠져들 수 있는 은퇴의 삶에서, 매일 아침 울금과 망고를 대면하는 이 '단 한 번의 적용'은 나를 어둠 속에서 건져 올리는 가장 확실하고 필연적인 구원의 통로가 된다. 4.
고통의 진흙탕에서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듯 올해 오월의 뜨락을 채웠던 수많은 꽃을 떠올린다. 5·18의 아침을 맞이했던 흑장미는 자기구원과 민주주의의 구원을 묵직하게 웅변했고, 첫 발령지의 제자가 보내온 호접란은 스승과 제자의 고결한 인연을 나비의 날개짓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부처님오신날의 연꽃은 진흙이라는 탁한 고통 속에서 가장 맑은 꽃을 피워냈다.
내가 마주한 퇴직 후의 우울과 고통은, 어쩌면 연꽃이 딛고 선 그 어두운 '진흙'일지도 모른다.
진흙이 없다면 연꽃이 피어날 수 없듯이, 우울과 고통이라는 삶의 정직한 실존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인간 영혼의 진정한 성숙과 개화(開花)는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기꺼이 울금을 먹고 망고를 먹는다.
우울을 금하고 고통을 잊으며, 내 안에 남아 있는 삶의 향기를 맑게 길어 올린다.
"퇴직하면 즐거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울과 고통으로 산다"는 고백은 슬픈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그 어둠마저도 내 삶의 당당한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거룩한 수용의 서시다.
찬란한 노란빛의 울금망고와 함께, 내 남은 황혼의 여정도 우울에 함몰되지 않고 고통을 넘어서는 위대한 자기구원의 여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식탁 위의 작은 정원에서, 나의 인생은 오늘도 고요하고 향기롭게 다시 피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