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서넛이 모여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끊임없이 위로 넘어가는 짧은 영상(숏폼)의 속도만큼이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숨 가쁘게 터져 나온다.
"야, 이거 완전 '느좋'인데?" 한 아이가 툭 던진 말에 다른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킥킥댄다.
순간 내 머릿속에 가벼운 지진이 일어난다.
'느좋?
느낌이 좋다는 뜻인가.' 마음속으로 가만히 단어를 굴려보며 나도 모르게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비밀번호 하나를 방금 건진 기분이다.
요즘 아이들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라는 거대한 디지털 세상 속에 갇혀 산다.
'남자는 더 멋지게, 여자는 더 예쁘게' 가공된 타인의 완벽한 일상이 시시각각 화면을 채우고, 아이들은 그 화려한 필터 속 모습과 날것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하루 3시간이 넘도록 영상 속에 눈을 묻고, 카카오톡보다는 인스타그램 DM으로 일상의 숨결을 나누는 시대.
오죽하면 호주처럼 법으로 청소년의 SNS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최근 인스타그램이 청소년 계정의 문턱을 대폭 높이는 규제를 도입했을까.
학교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교육자로서, 그리고 집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런 변화가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사실 어른들의 눈에 요즘 아이들의 언어와 문화는 낯설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정체불명의 밈(meme)과 줄임말, 뜻을 알 수 없이 반복되는 기괴한 어구들이 교실과 거실을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거친 신조어의 이면에는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간절한 소속감과 "나도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인정욕구가 숨어 있다.
"이 유행어 몰라?"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는 나이.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어 자극적인 표현으로라도 친구들의 주목을 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면 불안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아이들만의 서툰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이를 두고 무조건 스마트폰을 빼앗거나 "상스러운 말을 쓰지 말라"고 잔소리만 하는 것은 서툰 처방이다.
울타리를 높이 친다고 해서 아이들이 숲으로 가고 싶은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금지하고 단절하기보다는, 그들이 왜 그토록 그 세계에 열광하는지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쓰는 낯선 언어의 뜻을 미리 검색해 보고 그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요즘 시대의 '부모 공부'이자 '교사 공부'가 아닐까 싶다.
어른들에게는 외계어 같지만, 아이들에게는 '가장 트렌디한 소통의 언어'인 셈이다.
신조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낯선 세계를 이어줄 '통역'이다.
아이들의 언어를 우리의 언어로 역지사지해 보고, 우리의 도덕적 기준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번역해 주는 과정.
그 통역의 수고로움 속에 진정한 소통이 있고, 그들의 마음과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지름길이 열린다.
"선생님, 오늘 날씨 진짜 느좋이예요!" 단어의 뜻을 알고 나니, 아이가 건넨 삐딱한 한마디가 눈이 부시도록 다정하게 다가온다.
그들의 언어를 귀담아듣는 일, 그것은 아이들의 거친 손을 잡고 건강한 디지털 세상으로 함께 걸어 나가는 따스한 동행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