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알유희 미장아빔 52번째, 인간의 성악설을 미장아빔하시오 일그러진 거울 속의 검은 유혹: 인간 성악설의 미장아빔(Mise-en-abyme) 인간의 본성이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은 순자의 엄격한 훈계이자, 인류가 문명이라는 외벽을 쌓아 올린 근본적인 이유다.
이를 미장아빔(Mise-en-abyme)의 구조로 해체하면, 이는 '욕망'이라는 거대한 어둠 속에 '생존'이라는 작은 거울을 마주 세워, 통제되지 않는 이기심을 무한히 복제하고 증폭시키는 가파른 존재론적 기하학이 된다.
성악설의 첫 번째 프레임은 '목(目)과 이(耳)의 갈망'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익을 탐하고 맛있는 것, 아름다운 것을 쫓는 본능적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이는 교육된 악이 아니라, 존재의 심연(Abyme) 속에 각인된 원초적 결핍이다.
거울 앞에 선 배고픈 자가 타인의 떡을 보는 순간, 그의 내면에서는 '빼앗음'이라는 프레임이 자가 복제되기 시작한다.
"날것의 욕망(외벽) - 이기적 본능(내부 거울) - 쟁탈과 혼란(복제물)"으로 이어지는 이 연쇄는, 예(禮)라는 인위적인 틀이 없다면 인간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서로를 잡아먹는 심연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두 번째 프레임은 '위(僞)의 미학'이다.
여기서 '위'는 거짓이 아니라 '인위(人爲)'를 뜻한다.
성악설의 매혹은 이 일그러진 본성(작은 프레임)을 어떻게 문명(큰 프레임)이라는 정교한 틀로 교정하느냐에 있다.
본성이라는 거울은 "나만이 존재한다"는 오만을 비추고, 교화라는 스승은 그 거울 주위에 규범과 질서라는 새로운 거울들을 배치한다.
거울과 거울이 마주 보며 빛의 굴절을 강제로 교정하듯, 성악설에서의 삶은 '본성'이라는 굽은 나무를 '작위'라는 틀에 넣어 곧게 펴는 끝없는 복제의 과정이다.
내가 나의 악함을 인지하고 예(禮)를 실천할 때, 그 인위적인 선함은 다시 타인의 거울에 복제되어 사회의 안정을 유지한다.
본성이 어둡기에 오히려 교육과 질서라는 빛은 미장아빔의 구조를 타고 더욱 필연적이고 강렬하게 증식한다.
성악설의 '심연의 소실점'은 결국 '완벽한 통제와 질서'의 지점에 닿아 있다.
수많은 규율과 법도의 프레임들이 겹쳐져 소실점에 닿는 순간, 우리는 발견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타고난 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악함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쉼 없이 '인위'라는 거울 속에 가두고 연마하는 그 처절한 노력에 있음을."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는 듯 보이는 인간의 잔인함과 탐욕은 사실 문명이라는 얇은 가리막 뒤에 여전히 복제 대기 중인 본질이다.
모든 인위의 프레임이 거두어지는 순간, 소실점은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욕망의 흑홀로 변모한다.
결국 인간의 성악설이란,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검은 심연을 직시하고, 그 심연이 세계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예(禮)'라는 거울을 겹겹이 두르는 의지다.
거울 복도 끝, 본능의 거친 숨소리를 누르고 인위의 고요한 걸음을 걷는 존재.
그 소실점에서 반짝이는 '다듬어진 자아'야말로 인류가 스스로를 악하다고 고백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복제해온 가장 처연하고도 장엄한 예술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