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 월드프렌즈 봉사단, 몽골과학기술대학교(MUST) 다르항 캠퍼스 교수 몽골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학생들은 성실하다.
문제도 잘 풀고 시험 성적도 좋다.
그러나 수업이 끝난 뒤 질문을 던지면 종종 침묵이 찾아온다. “왜 이 개념이 만들어졌을까?” “왜 우리는 이것을 배우는가?” “이 지식은 인간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학생들은 정답을 알고 있지만, 질문은 낯설어한다.
이 모습은 몽골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교육이 마주한 공통된 모습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을 지식 전달의 과정으로 이해해 왔다.
교사는 알고 있고 학생은 배운다.
시험은 얼마나 많이 기억했는지를 평가한다.
이러한 체계는 산업화 시대에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더 빠르게 검색한다.
단순한 암기와 정답 찾기는 더 이상 인간만의 능력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 질문은 교육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철학의 문제다.
우리는 오랫동안 학문이 학교와 책 속에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인간의 배움은 원래 삶 속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을 관찰하며 계절을 배웠고, 경험을 통해 생존의 지혜를 익혔다.
책보다 먼저 세계를 읽었다.
몽골 초원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삶을 보며 나는 이 사실을 자주 생각한다.
날씨를 읽고, 가축의 움직임을 이해하며,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부모와 조부모의 삶을 통해 전해진 경험의 지식이다.
물론 경험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학교 지식만이 진짜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류다.
근대 이후의 교육은 보편적 지식과 객관적 정답을 추구해 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쳤다.
지식은 답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공식을 먼저 떠올리지 않았다.
그는 먼저 “왜 떨어지는가?”를 물었다.
아인슈타인 역시 정답을 찾기 전에 상상했다.
위대한 발견은 암기에서가 아니라 질문에서 출발했다.
교육의 목적은 정답을 많이 아는 학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힘이다.
익숙한 지식을 낯설게 바라보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앞으로의 교육은 더 많은 정보를 가르치는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학생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연결하고, 의심하고, 질문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AI가 정답을 찾아주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답이 아니다.
어쩌면 미래 교육의 수준은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답을 기억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