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알유희 79번째, 꽃이 예쁜 것은 예뻐서가 아니라,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꽃이 예쁜 것은 단지 색이 고와서, 형태가 단정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를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피고, 때가 지나면 미련 없이 진다.
그 사이에 어떤 계산도, 어떤 변심도 끼어들지 않는다.
우리는 그 단순하고도 확실한 반복 속에서 안도한다.
꽃은 약속을 말하지 않지만, 이미 지켜진 약속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다.
사람의 세계는 다르다.
말은 쉽게 약속이 되지만, 그 약속은 쉽게 변한다.
어제의 진심이 오늘의 변명으로 바뀌고, 오늘의 다짐이 내일의 침묵으로 가라앉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완전히 믿지 못한다.
아름다움 뒤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균열을, 혹은 돌연한 변화를 미리 상상한다.
그러나 꽃 앞에서는 그런 경계가 풀린다.
꽃은 변하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의 시간을 충실히 통과할 뿐인데, 그것이 곧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벚꽃은 바람이 불면 흩어진다.
우리는 그 흩어짐을 슬퍼하면서도 동시에 안심한다.
그 꽃이 끝까지 붙들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피어야 할 때 피고, 져야 할 때 지는 것.
그 질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로한다.
만약 꽃이 욕심을 낸다면 어떨까.
더 오래 피어 있으려 한다면, 더 많은 시선을 붙잡으려 한다면, 우리는 그 꽃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짧음에 있고, 그 짧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해진 방식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꽃은 늘 변한다.
봉오리에서 만개로, 만개에서 낙화로.
그러나 그 변화는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그 변화는 예정된 흐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변화를 배신으로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변화 자체를 믿는다.
꽃은 사라지지만, 사라짐마저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꽃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결국 자신에 대한 반성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로 배신하는가.
처음의 마음을 잊고, 처음의 길을 바꾸고, 처음의 약속을 흘려보낸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변명한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시간이 흘렀다고.
하지만 꽃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떻든, 시간이 어떻게 흐르든, 자기의 리듬을 지켜낸다.
그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꽃은 예쁘다.
눈으로 보이는 색과 형태 때문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 일관성 때문이다.
꽃은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
대신 보여준다.
이렇게 살 수 있느냐고.
이렇게 변할 수 있느냐고.
이렇게 사라질 수 있느냐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말을 잃는다.
꽃이 예쁜 것은 결국 신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이미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존재.
그 믿음이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그 편안함이 아름다움으로 번진다.
그래서 우리는 꽃을 보며 웃는다.
그 웃음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잠시나마 배신 없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안도의 표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