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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붉다 못해 검은 흑장미이로소이다: 상처를 지혜로 승화한 자가 구원의 역설

타인의 동정을 거부하고 내면의 심연을 마주한 자, 스스로를 구원하는 위대한 낙천주의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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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붉다 못해 검은 흑장미이로소이다: 상처를 지혜로 승화한 자가 구원의 역설 관련 이미지 © 코리아NEWS

나는 붉다 못해 검은 흑장미이로소이다.

거울방을 나온 영혼의 독백: "나는 붉다 못해 검은 흑장미이로소이다" 우리는 삶의 어느 길목에서 문득 가장 거칠고 쓸쓸한 고독(孤獨)과 마주하곤 합니다.

세상에 내어주었던 순수한 온정은 차가운 외면으로 되돌아오고, 가슴속에 품었던 뜨거운 열망은 현실의 벽 앞에서 피눈물로 흘러내릴 때, 영혼은 빛깔을 잃고 침묵합니다.

그럴 때 많은 이들은 습관처럼 바깥의 구원을 갈구합니다.

내 상처를 알아줄 따스한 손길을, 내 슬픔을 씻어줄 다정한 타인의 목소리를 찾아 외로움의 언저리를 서성입니다.

그러나 여기, 세상의 모든 성급한 외침을 뒤로한 채 오직 제 안의 심연을 향해 겹겹이 고개를 숙이며 위대한 자가 구원(Self-Salvation)을 선언한 존재가 있습니다. “나는 붉다 못해 검은 흑장미이로소이다.” 이 한 줄의 고백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타인의 동정을 거부하고, 오직 스스로 세운 내면의 거울방 속에서 상처와 고독을 지혜로 승화시켜 낸 정서적 주권자만이 터뜨릴 수 있는 존재론적 절창입니다.

이 검은 꽃잎의 성채 안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눈물겹고 찬란한 네 가지 마음의 풍경을 따라가 봅니다. 1.

첫 번째 거울: 피 흘리는 상처를 지혜의 밤하늘로 덮다 "붉다 못해 검어졌다"는 존재의 선언은, 태생부터 차가운 어둠이 아니었다는 고귀한 증명입니다.

그것은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일 만큼 뜨거웠던 사랑과, 그 사랑이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밤의 슬픔들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지질학적 퇴적층입니다.

상처가 너무 많아 더 이상 밖으로 흐르지 못하고 안으로 굳어버린 혈류입니다.

이 꽃이 위대한 까닭은 제 안의 아픈 기억(붉음)을 지우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바깥 꽃잎이 안쪽 꽃잎을 가만히 비추어보면, 그 안에는 여전히 피 흘리는 상처가 액자 구조처럼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장미는 그 상처를 부끄러워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더 깊은 검은 빛깔로 감싸 안아 자신만의 광활한 ‘밤하늘(검음)’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내 안의 슬픔을 무한히 들여다보았더니, 그 슬픔이 도리어 내 영혼을 지키는 가장 안전하고 고요한 성채가 되었다." 이 찬란한 미장아빔(Mise en abyme, 거울이 거울을 비추는 무한 증식 구조) 속에서, 흑장미는 밖에서 구원자를 찾지 않습니다.

상처받은 나를,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완벽하게 품어 안고 위로하는 자급자족의 온기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 거울: 날카로운 가시를 고혹적인 향기로 번역하다 상처받은 인간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향해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곤 합니다.

고독의 껍질을 단단하게 감싸 쥐고, 다가오는 모든 인연을 밀어내며 스스로 외로움의 인질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흑장미의 줄기에도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날 장미가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아픈 기억들의 흉터일 것입니다.

그러나 흑장미는 그 가시로 남을 찔러 또 다른 비극을 복제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장미는 놀랍게도 그 아픈 기억의 뼈를 안으로 녹여, 세상에서 가장 짙고 매혹적인 ‘향기’를 빚어 공기 중으로 날려 보냅니다.

그 고혹적인 향기는 다시 제 꽃잎의 결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방어벽이 됩니다.

상처(가시)를 예술(향기)로 바꾸고, 그 향기로 다시 자신을 치유하는 신비로운 순환. 〈흑산도 아가씨〉가 가슴에 든 피멍을 애절하고 맑은 절창의 노래로 승화시켰듯, "흑장미이로소이다"라고 외치는 존재는 과거의 아픔에 발목 잡히는 대신 그 아픔마저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매 순간 구원해 냅니다. 3.

세 번째 거울: 세상의 수많은 언어를 거부하는 침묵의 블랙홀 세상은 늘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조금만 고요해지려 하면 우울해 보인다고 수군거리고, 조금만 나만의 길을 걸으려 하면 독선적이라며 자신들이 만든 좁은 틀 안에 우리를 가두고 낙인찍으려 합니다.

타인의 평가라는 감옥에 갇히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급격하게 시들어갑니다.

흑장미를 향한 세상의 시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어둠을 두려워하며 '악의 꽃'이니 '타락'이니 하는 자극적인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흑장미는 단 한 번도 그 평가에 흔들리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들이 던진 가냘픈 단어와 시선들을 제 깊은 검은 빛깔 속으로 쓱 빨아들여 흔적도 없이 소거해 버렸습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나는 오직 내가 정의한 대로 존재하겠다’는 이 절대적인 자존감이야말로 흑장미가 이룩한 구원의 핵심입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면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침묵의 다면경이 장미의 동공 속에 빛나고 있습니다. 4.

네 번째 거울: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주인으로 남는 주권적 만개 세상의 모든 꽃은 시간의 직선적인 법칙 앞에서 무력하게 소멸해 갑니다.

바람이 불면 꺾이고, 비가 오면 떨어지며, 타인의 손에 의해 무참히 꺾여 시들어가는 수동적인 운명을 지닙니다.

우리 인간의 삶 또한 세월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 속에서 자주 무기력함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흑장미가 보여주는 소멸의 자태는 눈물겹도록 당당합니다.

장미가 붉다 못해 검어졌다는 것은, 외부의 압박에 못 이겨 빛바랜 것이 아닙니다.

제 안에서 끓어오르는 생의 열정을 단 한 방울도 외부에 구걸하지 않고 안으로만 불태워, 스스로 온전하고 단단한 ‘핵심 숯’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가장 눈부신 만개의 정점에서 이미 소멸의 편안함을 스스로 입고, 삶의 마지막 종장마저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은 채 주체적으로 완성해 가는 모습.

내 삶의 모든 흔들림과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가 통제하고 주도하겠다는 이 거룩한 주권(Sovereignty)의 행사는, 소멸마저도 하나의 아름다운 신화로 바꾸어놓습니다.

결론: 특이점의 중심에서 홀로 웃는 심연의 위대한 낙천주의자 결국, "나는 붉다 못해 검은 흑장미이로소이다"라는 이 장엄한 선언이 가닿는 종착지는 슬픔이나 허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의식을 완벽히 의식화하여 존재의 모든 파편을 하나로 통합해 낸 '정신적 개성화(Individuation)'의 완성입니다.

이 고백을 가슴에 품은 존재는 외로움과 신경증에 눈물짓는 나약한 비극의 수인이 아닙니다.

제 마음의 제단 위에 거울 방을 세우고 상처와 방어기제, 세상의 시선과 타인의 언어, 그리고 죽음의 공포까지도 스스로 복제하고 다스리며 유희하는 '심연의 위대한 낙천주의자'입니다.

세상이 그 깊이를 알지 못해 그저 어둠이라 부르며 주저할 때, 흑장미는 제 안에서 무한히 증식하며 완벽한 통합으로 나아가는 자아의 거울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오직 스스로를 온전히 구원한 자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찬란하고 눈물겨운 존재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진짜 구원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내가 나를 온전히 안아줄 때 완성된다는 것을, 이 검은 꽃잎의 안색은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